[Reflection] "Do we walk in legends or on the green earth in the daylight?"
석굴암과 반지의 제왕

Photo Credit: Seokguram, 석굴암, 경주, South Korea, by D. Jaeger 며칠 전, 세 명의 이메일 친구들과 오랜만에 책과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는 거의 한반도와 관련된 지정학 이슈를 논의하는 사이지만, 이번엔 뜻밖에도 대화 주제가 책으로 흘렀다. 계기는 내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중국의 어느 도시의 아주 미래적인 디자인의 서점 사진이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책을 읽는 즐거움, 한국과 뉴질랜드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매혹적인 서점들, 책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결국 미국에서 좋은 서점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나누었다. 그 대화를 계기로 다시금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기쁨 하나가 되살아났다. 책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이 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부끄럽게도 이번이 두 번째다. 더 부끄러운 건, 나는 이 작품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로도 워낙 유명해져서 좀 반지의 제왕의 팬이란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최근 이 작품만큼 나를 깊이 위로해준 책은 드물다. 다시 이 책을 집어든 건 작년 12월, 윤석열 정권의 불법 계엄 음모가 드러나고, 고통스럽고도 긴 여섯 달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나 역시 수많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핸드폰을 붙잡고 빛의 혁명의 소식을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때,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무언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나는 톨킨의 세계로 들어갔다. 사실, 톨킨 자신도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 속에서 이 서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사람은 픽션 속으로 도망간다. 특히 끝없이 이어지는 서사 속에서 비극과 영웅, 성자와 악인이 펼치는 모험담은 끝나지 않는 세계처럼 위안이 된다. 정권이 바뀌고, 내가 지지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또다시 톨킨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아직 쿠데타의 후유증이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