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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President Lee should do with over 80% support from voters in their 40s? (1)

40대 지지율 80% 돌파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들을 믿고 트럼프에 대항, 주권, 국익 추구해야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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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Paris - Musée du Louvre, 2012, D. Jaeger; Canon EOS REBEL T2i; EF50mm f/1.8; f/2.0;50.0mm;1/60;iso 640;flash off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60% 를 넘어섰다. 나는 당연히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한다. 그는 수년 만에 한국 정치에 등장한 가장 결정적인 인물이며, 나는 그의 당선을 지지하기 위해—보다 정확히는 대한민국의 자기결정권을 되찾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며, 윤석열의 계엄령 기도와 반헌법적 탄압을 막기 위한 국민적 운동인 ‘빛의 혁명’의 승리를 지지하기 위해—이 소박한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렇기에 지난 7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대한 우려스러운 의존을 드러내는 발언이 나왔을 때, 깊은 우려를 느꼈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한-미 간에 든든한 공조와 협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대통령은 남북 간 대화를 추진하되, 그것을 한미 공조와 강력한 국방력에 기반하겠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면 실용적인 외교 전략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평화의 토대를 허물 수 있는 모순이 숨어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주권이다. 사실 기자회견 돌이켜보면, ‘주권’이나 ‘자기결정’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전체를 아직 시청하지 않았기에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용어들이 빠졌다면, 그 침묵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단지 이 발언이 원칙의 후퇴가 아닌 전술적 언사이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동맹에 대한 충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7월 7일, 트럼프는 주권 국가 간의 외교 문서라기보다, 깡패의 협박에 더 가까운 편지를 이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럼프는 이 편지에서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들며, 8월 1일부터 한국산 제품에 대해 25%...


한 북한 학자의 질문:

"왜 미국은 우리와 평화협정을 맺으려 하지 않습니까?

A North Korean scholar’s question:

“Why does the United States refuse to sign a peace treaty with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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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Buddhist zen martial art in the form of dance, South Korea, 선무도, 경주, 골굴사 D. Jaeger, 2012 “젠장, 스콧, 제발 써라—진실을 써라. 누구를 다치게 하든, 무엇을 건드리든 간에. 그 멍청한 타협 따위는 하지 마라." 헤밍웨이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F.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한 글쓰기 조언의 한 부분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글쓰기 조언이 필요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거의 역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함이다. 사실 문학과 픽션에서는 정직함을 실천하는 일이 오히려 더 쉽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래서 픽션은 현실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지도 모른다. 반면 현실, 그리고 현실을 다룬 글쓰기에서는 자주 연기자가 되는 기분이다. 늘 독자를 의식한 채,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말하고 쓰는 듯한 느낌이다. 정직함보다 연기를 한 경험을 한 순간이 떠오른다. 오래전 동북아시아 평화 구축을 주제로 열린 국제회의에서 북측 학자와 짧은 질의응답을 나누었을 때다. “ 천 교수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왜 미국은 우리와 평화협정을 맺으려 하지 않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천안함 사건 직후, 홍콩에서 열린 회의였고, 북측 대표단은 단 두 명뿐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자, 대사, 총영사 등 30여 명의 초청 연사 가운데 내가 질문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이제 막 조교수 2년 차였고, 학문적 경력도, 정치적 무게감도 다른 이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입장이었다. 내가 내놓은 답변은 어색하고 진부했다. 외교적이고 신중했으며, 모든 방향에 여지를 남기는 문장이었다. 북측 대표에게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그리고 언젠가 이 발언을 접할지도 모를 누군가를 의식하며 조율한 발언이었다. 나는 중립적인 척했고, 균형을 맞추려 했고, 아주 안전한 언어만 골라 말했다. 나 (대한...


게하르 릭터의 「회색 회화」

[Personal Reflection] On Gerhard Richter’s Grey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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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hard Richter’s Grey Painting 오늘 떠오른 가장 미친 생각은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하나의 행동을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는 것. 다른 하나는, 내 시간 — 내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 ‘사고’와 연결짓는 것. (읽기, 쓰기 등과 관련된) 이 두 생각은 어떤 면에서 서로 얽혀 있다. 독일의 예술가 게하르 릭터의 「회색 회화(Grey Paintings)」 시기를 떠올려보라.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오직 회색만을 반복해서 그렸다. 정확히 몇 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백 점은 족히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예술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거기서 내가 얻은 한 가지 통찰은 이것이다. 똑같은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라.행동, 지속적인 반복, 끊임없는 연속성에 몰입하는 그 자체가, 어쩌면 무력감과 불가능이라는 감각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복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무엇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아주 크다. 그 목적은 해결(resolution)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불러내고, 끌어올리는 시도에 있다. 반복 그 자체가 하나의 발명 방식이 된다. 그것은 통합하고, 교란하며, 균열을 만든다 — 그 틈 사이로 새로운 의미가 스며들 수 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는 맹인처럼,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버려진 사람처럼, 우리는 그저 앞으로 더듬으며 나아간다. 이 과정은 ‘적극적인 무지(active ignorance)’를 요구한다 — 확실하지 않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수수께끼를 끌어안는 태도. 바로 그 발명의 순간에, 놀라움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놀라움 안에는, 새로운 것을 마주할 가능성, 해방, 의미, 기존에는 닫혀 있었던 것에 갑작스레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숨어 있다. How does one communicate with, or confront, fascism, war, violence, genocide, and ...


“돌아오겠다는 약속”

미국의 한 한국인

고 오인동 박사를 기리며 (1934–2025)

“A Promise to Return”:

In Memory of

Dr. Indong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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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D. Jaeger, Los Angeles-LACMA, 2012 Canon EOS Rebel T2i; EF40mm f.2,8 STM; f/5.6; 40.0mm; 1/160; iso200; flash off, “하루 종일 주류 언론은 괴물들 이야기만 쏟아내고, 성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 문득문득 돌아가신 시아버님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은퇴한 핵물리학자이자 전직 대학 총장이었고, 지적인 모든 것에 열정을 가진 분이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뉴스를 읽으며 세상의 일에 투덜거리시는 모습이 익숙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책을 덮고는 벌떡 일어나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주로 물리학 이야기, 스탠퍼드 시절 접했던 아인슈타인의 제자들, 과학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시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이 잔혹한 세상에 맞서려는 지적 투쟁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나는 우연히 한 부고 기사를 읽고 시아버님처럼 벌떡 일어섰다. 6월 19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 한국인 정형외과 의사—교수이자 다작의 저술가, 예술 후원자였던 분의 이야기였다.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당신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의 추모사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Photo Credit: Hankyoreh 1939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뒤, 197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낯선 땅에서 그는 인공관절 분야의 개척자로 주목받으며 하버드 의대에서 교수로, MIT에서 강사로 강단에 섰다. 그가 개발한 고관절 수술 기법과 수많은 특허, 학술적 수상은 곧 세계가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말해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관절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며, 아시아계 미국인 의학자로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런 화려한 업적 그 자체뿐만이 아니...


[Reflection] "Do we walk in legends or on the green earth in the daylight?"

석굴암과 반지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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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Seokguram, 석굴암, 경주, South Korea, by D. Jaeger 며칠 전, 세 명의 이메일 친구들과 오랜만에 책과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는 거의 한반도와 관련된 지정학 이슈를 논의하는 사이지만, 이번엔 뜻밖에도 대화 주제가 책으로 흘렀다. 계기는 내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중국의 어느 도시의 아주 미래적인 디자인의 서점 사진이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책을 읽는 즐거움, 한국과 뉴질랜드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매혹적인 서점들, 책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결국 미국에서 좋은 서점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나누었다. 그 대화를 계기로 다시금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기쁨 하나가 되살아났다. 책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이 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부끄럽게도 이번이 두 번째다. 더 부끄러운 건, 나는 이 작품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로도 워낙 유명해져서 좀 반지의 제왕의 팬이란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최근 이 작품만큼 나를 깊이 위로해준 책은 드물다. 다시 이 책을 집어든 건 작년 12월, 윤석열 정권의 불법 계엄 음모가 드러나고, 고통스럽고도 긴 여섯 달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나 역시 수많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핸드폰을 붙잡고 빛의 혁명의 소식을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때,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무언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나는 톨킨의 세계로 들어갔다. 사실, 톨킨 자신도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 속에서 이 서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사람은 픽션 속으로 도망간다. 특히 끝없이 이어지는 서사 속에서 비극과 영웅, 성자와 악인이 펼치는 모험담은 끝나지 않는 세계처럼 위안이 된다. 정권이 바뀌고, 내가 지지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또다시 톨킨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아직 쿠데타의 후유증이 완...


미국인 정치학자들 이재명 대통령 실용외교에 힘을 실어 주다

South Koreans do not view China as an existential military th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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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발표를 취업 강연(job talk)처럼 준비하라.” 공개석상에서의 발표 태도에 관해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이었다. 이 말은 남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데이브 강(Dave Kang) 교수에게서 들은 것이다. 수년 전, 나는 USC 한국학연구소에서 개최한 젊은 한국학 학자 워크숍에 참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당시 참가자 전원은 '라이징 스타 스칼라(Rising Star Scholars)'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에 선정된 사람들이었는데 (이름이 다소 어색하긴 하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후원을 받아 미국 내 한국학 분야의 신진 교수들을 지원하기 위해 강 교수가 직접 기획·운영한 것이었다. 강 교수가 전한 핵심 조언은 매우 간단했지만 강력했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라.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 발표든 강연이든, 모든 구두 발표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강 교수는 탁월한 발표자이자 설득력 있는 화자이기 때문에, 본인의 조언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 역시 그의 조언을 더 충실히 따랐더라면 좋았겠지만—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강 교수는 발표뿐 아니라, 후학을 위한 멘토링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 한국학 전공자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헌신은 실로 귀감이 될 만하다. 나의 견해로는, 미국에서 한국학 전공자로서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려면 최소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우리말이 생각난다.특히, 한국만을 고립된 연구 대상으로 삼기보다, 한국을 더 넓은 지정학적·국제정치적 분석 틀 안에 위치시키려는 연구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을 포위하려는 상황에서, 한국은 가장 어려운 외교적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윤석열 정부의 재앙적인 호전적 외교가 한반도를 전쟁 직전까지 몰고 ...


U.S. Militaristic Policy Means Financial Bleeding to Death for Korea
미국의 전쟁 중심 한반도 정책은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 전쟁 선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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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D. Jaeger. Donghaw Buddist Temple, Daegu, 2013 동화사, 경북 “팔로 팔을, 사람으로 사람을, 이 세계는 그저 전쟁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부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단 하나의 핀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다 쾅! 쾅! 덜그럭!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박사 논문을 쓰느라 고군분투하던 어느 시절, 버클리 법대 도서관에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노트북을 켜두고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노트를 들여다봐도 글 한 줄 못 쓰는 날이 많았다. 그 시절, 나는 위의 문장을 쓴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운동을 하면서도, 지하철에서도, 심지어 우리 좁은 1베드룸 스튜디오 아파트 안--부엌에서도, 거실에서도--어디에서든 그녀의 책을 읽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그녀의 글에 빠져들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것은 이 글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들 모두 1~2년 안에 공중분해될 거예요. 더 이상 영국이란 나라는 없을 거예요.” 버지니아 울프는 흔히 페미니즘 문학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내게 그녀는 영문학에서 가장 강렬한 반전(反戰)의 목소리를 낸 작가였다. 그녀의 소설 중 어느 작품이 가장 뛰어난지는 아직도 단정 짓기 어렵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댈러웨이 부인』은 실로 압도적이고, 『파도』는 서정성과 철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적 소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인 『막간(Between the Acts)』은 개인적으로 가장 각별하다. 단지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가오는 전쟁을 예감하며 쓰여진 이 소설이 울프의 반전 철학을 가장 깊고 섬세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막간』은 짧은 소설이지만, 그 제목 자체가 강력한 은유다—전쟁과 전쟁 사이의 정적. 겉보기에 평화롭고 평범한 여름날이 이어지지만, 그 아래에는 전쟁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고요함은 위장막일 뿐이고, 그 배후엔 불안과 공포가 도사리...